Jan 15, 2015

우리말, 총각김치 2015-01-16

삶과 함께하는 우리말 편지
2015. 1. 16.(금요일)
총각무를 ‘알무’ ‘알타리무’라 하는 사람도 많다. 허나, 이들 단어도 이젠 표준어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제 동아일보에 나온 기사를 함께 읽겠습니다.

http://news.donga.com/3/all/20150115/69094613/1
[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총각김치

‘총각김치.’ 요즘 밥상의 단골손님이다. 손가락 굵기의 어린 무를 무청째 담근 김치다. 그런데 왜 하필 ‘총각김치’일까. 무나 배추 한 가지로만 담근 김치를 ‘홀아비김치’라고 하니 알 듯싶다가도, ‘처녀김치’는 없으니 궁금증이 더한다.

총각은 한자어로 ‘總角’이다. 지금은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자’를 가리키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총(總)은 ‘거느리다, 묶다’, 각(角)은 ‘뿔’을 뜻한다. 그러니 총각은 ‘머리를 땋아서 뿔처럼 묶는 것’이고, 총각무의 총각은 ‘머리처럼 땋아서 묶을 수 있는 무청’으로 볼 수 있다(조항범,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한 줌 안에 들어올 만큼을 모아 묶은 미역을 ‘총각미역’(표준어는 ‘꼭지미역’)이라 하는 걸 보면 ‘총각’은 분명 묶는 것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총각무로 담근 김치가 총각김치고, 총각무로 담근 깍두기가 ‘총각깍두기’다. 처녀무가 없으니 처녀김치는 애당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총각이라는 단어는 일본으로 건너가 ‘총가(チョンガ)’라는 말로 살짝 바뀌었다. 뜻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로 우리말과 같다.

깍두기 얘기가 나왔으니 ‘석박지’ 얘기도 해보자. 가끔 설렁탕집 같은 데서 내놓는 엄청 큰 깍두기를 ‘석박지’ ‘석박김치’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틀렸다. 크기에 관계없이 무로 담근 김치는 ‘깍두기’일 뿐이다. 우리말에는 ‘석박지’란 단어도 없다. ‘섞박지’가 옳다. 배추와 무, 오이를 섞어 만든 김치라는 뜻이다. ‘석박김치’는 북한어다.

총각무를 ‘알무’ ‘알타리무’라 하는 사람도 많다. 허나, 이들 단어도 이젠 표준어가 아니다. 1988년 개정 표준어 규정은 알무, 알타리무가 생명력을 잃었다고 보고 총각무로 통일해 쓰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한자어로 통일하기 전에 알무나 알타리무도 함께 쓸 수 있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무’도 그렇다. 무우를 버리고 무로 통일했다. 어느 시인은 ‘무우’ 대신에 ‘무’를 쓰지는 않겠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무 역시 서울 중심의 편의성만 앞세운 단어라는 것이다. 무가 옳든 그르든, 김치나 깍두기 말고도 따뜻하고 시원한 뭇국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아래는 2008년에 보낸 편지입니다.







[제가 누구냐고요?(2)]

안녕하세요.

오늘도 제 이야기 하나 할게요.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것으로...^^*
제가 언제부터, 왜 우리말 편지를 보내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저는 2003년 여름부터 우리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날마다 보내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보냈습니다.
우리말 편지를 보내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할게요.

우리말 편지를 처음 보낸 2003년은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입니다.
저는 연구원이다 보니 외국 책이나 논문을 자주 봅니다.
그래서 제 전공분야만큼은 웬만한 영어 원서나 논문, 일본어 원서나 논문은 사전 없이도 별 지장없이 봅니다.
아무래도 전공분야다 보니 보는 대로 눈에 잘 들어옵니다. 뜻도 쉽게 파악하죠.
미국에서 살다 보면 길 지나가며 보는 것도 꼬부랑글자요, 책상 앞에 와도 꼬부랑글자만 있습니다.
처음에는 헷갈리지만 좀 지나면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가끔 우리말로 된 책을 보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돕니다.

2003년 여름 어느 날,
학과사무실에서 영어 보고서를 봤는데 최신 내용으로 제가 일했던 한국으로 보내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학과장 허락을 받고 그 보고서를 받아와서 번역에 들어갔습니다.
이왕이면 보기 쉽게 해서 보내드리는 게 좋잖아요.

자리에 와서 보고서를 전체적으로 죽 훑어보니 정말로 좋은 내용이고 최신정보가 많았습니다.
숨고를 틈도 없이 바로 번역해 나갔습니다.
키보드 왼쪽에 보고서를 놓고 눈으로 읽으면서 바로 타자를 쳐 나갔죠.
제가 타자치는 속도가 좀 빠릅니다. 대학 때는 1분에 500타까지도 쳤으니까요. ^^*

문제는 그때부터입니다.
눈으로 보고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술술 잘 나갔는데,
이를 막상 우리말로 바꾸려고 하니 말이 잘 안 풀리는 겁니다.
영어 문장을 몇 번씩 봐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몇 번씩 읽어도 이게 영 어색한 겁니다.
영어 보고서를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이해하는 데는 몇 시간 걸리지 않았는데,
이 보고서를 번역하여 우리말로 바꾸는 데는 열흘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번역을 했는데도 말이 어색합니다. 매끄럽지 않아요. 맘에 안 들고...
아무리 읽어봐도 차라리 영어 원문을 그냥 보내주는 게 받는 사람이 이해하기 더 편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번역한 내용을 보내지 않고 영어 원문을 그대로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내가 늘 쓰는 우리말과 글이지만 내 머릿속에 든 것을 글로 나타내기가 이리도 힘들구나...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지껄이고 싶은 대로 지껄이고,
쓰고싶은 대로 끼적거렸지만 그게 제대로 된 게 아니었구나...
그저 내가 뭐라고 하건 남들이 대부분 알아들었기에 문법이나 체계도 없이 지껄였구나...
그러고 보니 내가 우리말을 공부한 적이 없네... 학교다니면서 국어시간에 문법을 공부한 게 다네...

그날 바로 인터넷으로 국어책을 주문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책 주문하면 무척 비쌉니다. ^^*
그래도 주문했죠. 남에게 보이고자 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내가 창피해서 얼굴 벌게진 채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때 주문한 책이 우리말 죽이기 우리말 살리기, 우리말답게 번역하기, 우리말의 속살 이렇게 세 권입니다.

며칠 기다려 배달된 책을 읽는데
책을 보면 볼수록 얼굴이 달아오르더군요.
어찌 이런 것도 모르고 함부로 나불거렸나... 예전에 나와 말을 섞은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흉봤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책 세 권을 읽고 나니 이제는 말하기가 겁나고, 글을 쓰는 게 두려웠습니다.
오히려 더 못쓰겠더군요.
그동안 내가 전공용어라고 떠들고 다닌 게 거의 다 일본말 찌꺼기였다는 것을 알고 받은 충격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 신선한 충격을 동료와 나누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고 무릎을 탁 치는 부분이 나오면,
그 부분을 따서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제가 있었던 연구실 직원 세 명에게 이메일로 보낸 거죠.

이게 우리말 편지를 보낸 한 계기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다음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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