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30, 2011

우리말, '입구와 출구'를 읽고 2011-10-31

오늘은 지난주에 보내드린 '입구와 출구'를 보시고 오용탁 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같이 읽고자 합니다.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저는 식구와 같이 오랜만에 제부도에 다녀왔습니다. 애들을 바닷가에 풀어놓으니 조개 주우면서 즐겁게 놀더군요. ^^*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이제 올 한 해가 가려면 겨우 두 달 남았습니다. 뭘 했는지 되돌아 보며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보내드린 '입구와 출구'를 보시고 오용탁 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같이 읽고자 합니다. 오늘 입구 출구 하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몇십 년 전 내가 현역 시절엔 마침 대기업마다 한참 컴퓨터 들여놓을 때였습니다. 그때 컴퓨터는 워낙 커서 쌩쌩한 냉방실에 바닥밑은 여러 cable이 깔린 매끈한 마루위에 무척 비싼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해 놓고 이를 '전산실'이라고 불렀습니다. 전산실엔 자연스럽게 INPUT 과 OUTPUT 이라는 팻말이 있게 마련입니다. data가 INPUT 쪽으로 들어가서 처리과정을 거쳐 report가 OUTPUT으로 나옵니다. 그 시절 컴퓨터는 이렇게 등치만 컸지 성능은 요즘 집집마다 있는 개인 컴 만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iPad 보다도 어엄청 못한 것이었지요. 그시절엔 관리자 책상에 '미결함' '기결함'이라고 한문으로 무게있게 놓여있었습니다. 세월과 함께 이것이 바뀌어갔습니다. 누군가 미결함 기결함을 INPUT OUTPUT으로 바꿔놓으면서 이것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영어로 쓰면 무언가 멋있게 보는 한심한 우리나라 정서에다가 그 시절 한참 기세 오르던 컴퓨터 바람을 타고 이런 바람이 불었던 거지요. 영어표시가 싫은 사람들은 영어 대신 入 出 이라 하기도 하고.. 나는 이것이 싫었습니다. 미결함 기결함을 마땅한 우리말로 바꾸고싶었던 참에 나는 이렇게 바꿨습니다. 들밭 날밭, 미결함을 들밭으로, 기결함을 날밭으로, 그때 중앙대학교순가 누가 쓴 우리 민속 윳놀이에 대한 논문에서 유판 말 가는 자리 이름에 말이 처음 들어가는 자리가 들밭, 나가는 마지막 자리가 날밭이었습니다. 농본사회에서 놀이도 '밭'이라는 이름으로 윳판을 만든것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도 되었었다면, 그때 내가 썼던 들밭 날밭이 크게 유행했었을런지도 모르지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몇자 적었습니다. 건강 빌며 오용탁 드림 고맙습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애] 제 옆에 오늘 면접을 보러 가는 친구가 있습니다. 무척 불안하고 애간장이 타겠죠. 오늘은 그 친구 합격을 빌면서 ‘애’ 이야기 좀 해 볼게요. ‘애’는 창자를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는 표현은, ‘애끊다’입니다. ‘애끊는 사모의 정, 애끊는 통곡’처럼 쓰죠. 창자를 끊으니 얼마나 아프겠어요. 발음이 비슷한 낱말로, ‘애끓다’가 있습니다.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워 속이 끓는 듯하다.”는 뜻으로, ‘애끓는 하소연, 애끓는 이별’처럼 쓰죠. 이것은 창자를 끓이는 아픔입니다. 창자를 끊는 게 더 아픈지, 끓이는 게 더 아픈지는 모르지만, 둘 다 큰 아픔을 표현하는 말인 것은 확실하죠. 둘 다 표준어입니다. 이런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두 낱말 사이에 이런 차이가 있지만, 둘 다 표준어이고 뜻도 비슷하니, ‘애끓다’가 맞는지 ‘애끊다’가 맞는지 고민하지 마시고, 맘 편하게 쓰시라는 뜻입니다. 요즘 국어사전에는, ‘애’를 “초조한 마음속”이라고 풀어놓은 것도 있습니다. 애를 태우다, 아이가 들어오지 않아 애가 탄다처럼 쓰죠. 면접을 앞두고, 애간장을 끓이는 그 친구를 보니, 제 애간장도 타들어갑니다. 부디 합격하기를 비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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