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9, 2015

우리말, 두껍다와 두텁다 2015-10-26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터에서 벼를 벴습니다.
태풍도 없고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알이 잘 여물었습니다.
콤바인이 논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두툼한 벼를 한보따리씩 쏟아 내네요. ^^*

자주 헷갈리는 낱말로 두껍다와 두텁다가 있습니다. 거기에 두툼하다까지 끼면 더 헷갈립니다.

'두껍다'는 "두께가 보통의 정도보다 크다."는 뜻을 지닌 그림씨이고,
'두텁다'는 "신의, 믿음, 관계, 인정 따위가 굳고 깊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두터우면 두꺼운 책도 믿고 빌려줄 수 있는 거죠. ^^*

'두툼하다'는 "꽤 두껍다"는 뜻입니다.
두툼한 편지, 두툼한 겨울 옷차림처럼 씁니다.
오늘 벤 벼를 담은 자루가 두툼했습니다.

'두툼하다'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합니다.
오늘은 용돈을 받아 주머니가 두툼하다처럼 쓰죠.

벼를 베고, 두툼한 자루를 보니, 마치 제 주머니가 두툼해진 것 같습니다. ^^*

고맙습니다.
아래는 2009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시쁘다와 시뻐하다]

안녕하세요.

어제는 저녁 7시에 집에 들어가서 옷도 벗지 않고 아침 7시까지 잤습니다.
말 그대로 시체처럼 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몸이 개운하네요. ^^*
아침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여러분이 보내신 답장을 읽었습니다. 제 일터에서는 네이버나 다음으로 온 편지를 읽을 수 없거든요.

제가 받는 편지에는 우리말이나 한글 맞춤법을 묻는 게 많습니다.
제가 알면 답변을 드리고 모르면 국립국어원으로 알아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그런 답장도 거의 삼사 일 있다가 보냅니다. 제가 편지를 잘 보지 못하니까요.

그런 편지에 대한 반응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나는 열 줄을 썼는데, 너는 왜 다섯 줄 밖에 답장을 안 쓰느냐,
왜 이리 늦게 답장을 하느냐, 공무원이 그래서 되느냐,
네가 답을 찾아서 알려줘야지 국립국어원에 물어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되느냐,
뭐 이런 게 많습니다.

여러분!
자주 말씀드리지만 저는 우리말을 공부하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편지를 보내드리는 것이지,
제가 아는 우리말 지식을 여러분에게 자랑하고자 보내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만큼 잘 알지도 못합니다.
또, 제가 보낸 편지에 잘못이 있으면 그건 제 개인의 잘못이지 제 일터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비록 공무원이긴 하지만 우리말 편지는 개인적으로 보내는 것이라 공무원으로서의 의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말편지를 보내면서 공무원들이 쓴다는 korea.kr 메일을 쓰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우리말에 '시쁘다'는 낱말이 있습니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시들하다."는 뜻입니다.
'시뻐하다'는 낱말도 있습니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시들하게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뇌꼴스럽다'는 낱말도 있습니다.
"보기에 아니꼽고 얄미우며 못마땅한 데가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보낸 편지에 제가 답장을 달지 않거나, 늦게 보내거나, 짧게 보내더라도 너무 뇌꼴스럽게 보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아는 게 없고, 일터에서 편지를 볼 시간도 없고, 집에서는 애들과 함께 보내는 게 먼저여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러니 제가 하는 짓이 시쁘더라도
우리말편지까지 시뻐해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멀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받은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사랑한다'는 말이 있네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가슴 뛰게 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은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

성제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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