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8, 2015

우리말, 헌화/꽃 바침 2015-10-15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어제 미국을 방문하셨고, 첫 일정으로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했다고 언론에 나오네요.
이 뉴스를 보고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헌화'가 뭐냐고 묻더군요.
돌아가신 분들께 존경의 뜻을 담아 꽃을 바치는 것을 이른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랬더니, "아~ 무덤에 꽃을 드리는 거네요"라고 받더군요.

요즘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헌화'를 모르니 그런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헌화'라는 한자말이 아닌 '꽃을 바친다.'는 우리말을 더 쓰도록 애 쓰는 게 먼저라고 봅니다.
우리말이 없다면 모를까, 있는 우리말을 두고 굳이 어려운 한자말을 쓸 까닭은 없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도 아는 것을 왜 어른들은 모를까요.

꽃을 든 남자가 멋있지,
화를 든 남자가 더 멋있지는 않잖아요.
^^*

고맙습니다.
아래는 2009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우리말, 막장은 희망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침 뉴스에 비친 볼썽사나운 국회를 보니 아침부터 기분이 영 꽝이네요.
이런 국회를 보고 '막장국회'라고 한다면서요?

어제 오후에 누리그물(인터넷)에 값진 글이 올라왔더군요.
대한석탄공사 사장님이 언론에 돌린 '막장은 희망입니다'라는 글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막장을 찾아보면 "갱도의 막다른 곳"이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막장을 "갈 데까지 간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에 석탄공사 사장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2000여 명의 우리 사원들은 지하 수백 미터 막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다"며
"본인들은 물론 그들의 어린 자녀를 포함한 가족들의 입장에서 막장 운운하는 소리를 들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라고 따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이란 게 살아 있어서 시대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요즘 부쩍 갈 데까지 간 드라마가 많고, 차마 입에 담기조차 싫은 폭력이 판치는 세상이다 보니 '막장'이라는 말을 쓰나 봅니다.
낱말이 그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겠죠.

문제는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면 자신도 모르게 삐뚤어진 가치관을 갖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 이 사회가 끝없이 곪아 들어간다는 겁니다.
높은 시청률과 돈벌이에 눈이 먼 방송사가 상식을 벗어나고 사람의 존엄성을 포기한 이야기로 드라마를 만들고 있으며,
그것을 보는 시청자 또한 갈 데까지 간 드라마 내용에 미쳐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막장'을 즐기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공동체가 '막장 사회'로 치닫는 거죠.

이 시대의 큰 기둥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신지 겨우 보름 지났습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각막을 기증하시고 가신 큰 어른의 뜻을 받들겠다고 앞다퉈 본받자고 한 것이 고작 보름 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 '고맙습니다'와 '사랑합니다'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그런 것은 빨리 잊고, 막장은 오래 기억하는 것일까요.
가슴이 답답합니다.





       ‘막장’은 희망입니다                                  
                                       

                                              조관일(대한석탄공사 사장/ 경제학 박사)  

요즘 갑자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용어가 있습니다. ‘막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막장 범죄’ ‘막장 드라마’ 운운 하더니 드디어 ‘막장 국회’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문제는 그 ‘막장’이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묻겠습니다. ‘막장’의 참뜻을 아십니까? 막장이란 말의 일차적 의미는 광산, 특히 석탄광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지하의 끝부분을 말합니다. 제일 안쪽이니까 마땅히 막힌 곳이고 막다른 곳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막다른 곳’이라는 점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폭력과 불륜 등 갈 데까지 다간 TV연속극을 ‘막장 드라마’라 하고 ‘이종격투기’가 난무한 국회를 ‘막장 국회’라고 합니다.

저는 대한석탄공사의 사장으로서 이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2천여 우리 사원들은 지하 수백 미터의 막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습니다. 민간탄광을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습니다. 본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어린 자녀를 포함한 가족들의 입장에서 ‘막장’운운하는 소리를 들을 때 얼마나 상심하고 가슴이 아픈지 생각해보셨습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실제로 탄광의 막장에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그곳은 폭력이 난무하는 곳도 아니고 불륜이 있는 곳도 아닙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고온을 잊은 채 땀흘려 일하며 우리나라 유일의 부존 에너지 자원을 캐내는 ‘숭고한’ 산업현장이요 ‘진지한’ 삶의 터전입니다. 그런 현장이 있기에 지금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있다고 우리는 자부합니다.

오늘날처럼 부귀영화에 눈이 멀고 호사스러움만 탐하는 세상에서 그 힘든 일을 웃으며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순수하고 성실한 사람인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막장의 근무환경은 열악합니다. 어둡고 꽉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결코 막다른 곳이 아닙니다. 막혀있다는 것은 뚫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계속 전진해야 하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최일선의 생산직 사원들은 막장을 뚫어 검은 보석 같은 석탄이 쏟아져 나올 때 “착탄(着炭)!”이라고 환호합니다. 그 것은 보람의 환호입니다. 앞으로 더 전진할 수 있다는 도전과 희망의 외침입니다.

이제 숨겨둔 마지막 말을 하겠습니다. 사전을 뒤져서 ‘막장’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보십시오. ‘막장’이란 낱말의 ‘막’은 ‘마지막’, 즉 ‘맏의 막’이란 뜻으로 ‘맏’은 ‘맏이’처럼 ‘첫째, 최고’를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에게 사용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막장’은 그렇습니다. 희망을 의미하며 최고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드라마든 국회이든 간에 희망과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 함부로 그 말을 사용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국회가 벼랑끝 대치 끝에 극적인 합의를 봐서 국민에게 희망을 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막장국회라면 좋겠습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의 생명이 좌우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날 경제개발의 과정에서 탄광에서 일한 사람들을 모두 합하면 우리나라에는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막장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가슴에 멍이 들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그렇잖아도 힘들고 어려운 때입니다. 말 한마디, 용어하나라도 남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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