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2, 2015

우리말, 이상한 병 201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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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제 어떤 분이 제게 보낸 편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삐비껍딱 님이 보내주셨습니다.
편지 뒷부분에 제 답장을 달아놨습니다. 실은 몇 년 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


어제는 종일 봄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화창하네요.
모처럼 한가해서 수다 좀 떨게요. ^^
아침에 페이스북을 보는데 어떤 분이 자기가 쓴 글에 맞춤법이 틀렸다고 누가 쪽지를 보냈다고 글을 올렸데요.
'삐뚤어질 테다'를 '삐뚫어질 테다' 이렇게 썼던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그 아래 댓글에 줄줄이 달렸는데 대부분 쪽지 보낸 사람을 비웃는 글이더라고요.
맞춤법 좀 틀리면 어떠냐, 뭐 이런 내용들.
그런데 한 분이 이런 댓글을 썼어요.
"그 사람도 틀렸다. '삐뚤어질 테다'의 올바른 표기는 '비뚤어질 테다'이다. 똥 묻는 개가 겨 묻는 개 나무란 격이다."

그래서 제가 또 그분께 쪽지를 보냈어요.(그분 페이스북으로 가보니 출판사 대표시더라고요.)
'삐뚤어질 테다'도 맞다. '비뚤어질 테다'보다 더 센 느낌을 주는 말이다.
참 오지랖 넓죠? ^^;;

우리말이 정말 어렵긴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 거라고 굳게 믿고 있죠.
그래서 나는 제대로 쓰고 있어, 라고 장담하고요.
저도 20대 후반에 '웬일인지'를 '왠일인지'로 알고 '웬일인지'라고 쓴 사람한테 '왠일인지'라고 우긴 적이 있었네요.
그때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다시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요.
전 정말 '왠일인지'라고 굳게 믿고 있었거든요. ㅎㅎ

선생님께 궁금한 게 있어요.
저는 맞춤법이 틀렸거나 띄어쓰기가 틀린 글자를 보면 참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글자를 보면 바로 볼펜 꺼내들고 고쳐요.
신문을 읽으면서도 빨간 펜으로 표시고요.(지역신문은 정말 심하거든요.)
인터넷 카페에서도, 블로그에서도, 신문 기사에도, 페이스북에서도 틀리게 쓴 걸 보면 댓글 달거나(가끔은 비밀댓글로), 오류 신고를 보내기도 하고요.
국립국어원, '안녕! 우리말',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누리집에서도 띄어쓰기 틀린 곳 발견해서 메일 보내고...
아무튼 사람들은 제게 거의 병적이라고 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참고 지나가는 편이네요. 사람들이 싫어하더라고요. ^^

선생님은 어떠세요?
제 이런 행동이 좋지 않은 습관일까요?

전 정말 심각해요. 제 행동이 안 좋은 건지...
가끔 페이스북에 여기 지역신문에서 보이는 오타나 띄어쓰기 틀린 걸 올리는데 이런 게 안 좋은 건지 싶고...
이런 적도 있어요.
전주 모 인터넷 신문에서 '~입니다'를 띄어 썼더라고요.
그래서 그 신문사 대표한테 쪽지로 보냈어요. '~입니다'는 앞말과 붙여야 한다고.
그랬더니 그분이 "그래요? 알써요. 기자들은 맞춤법에 꼭 맞추는 것보다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압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입니다'를 붙여 쓰면 이해하기 어려운가요?" 그랬네요.
도대체 맞춤법을 이해하기 쉽게 틀린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ㅋ
띄어쓰기도 지역신문 대부분이 '이해하는 데 있다' 이걸 '이해하는데 있다' 이렇게 쓰는데 그것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쓴 걸까요?
계속 페이스북에 이런 걸 올리면 기자들이 좀 고치려나요? ^^;;
요즘 제 고민이에요.


위에 있는 편지를 읽고,
그 답장으로 예전에 보낸 우리말 편지를 붙입니다.

[이상한 병]

저는 병이 하나 있습니다.
한 5년쯤 전에 걸린 것 같은데
이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도집니다.
책을 볼 때도 도지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도지고,
텔레비전 볼 때도 도지고,
술을 먹을 때도 도집니다.
증상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찌 보면 한 가지 증상입니다.

이 병이 무서운(?) 것은 그 전염성 때문입니다.
전염성이 강해 제 아내도 걸렸고,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감염됐습니다.
이제는 네 살배기 제 딸내미에게까지......

어제는 책을 볼 때 그 병이 도지더군요.
증상을 설명드릴 테니 무슨 병인지 좀 알려주세요.

어제는 을지연습 때문에 상황실에서 밤을 고스란히 새웠습니다.
자정이 넘으니 수없이 쏟아지던 상황도 좀 잦아들더군요.
눈치를 보며 슬슬 가져갔던 책을 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소설책인 '뿌리 깊은 나무'라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책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이상한 것만 눈에 보이는 겁니다.
또 병이 도진 거죠.

제 병의 증상은 이렇습니다.
책을 읽을 때,
'침전에 드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라는 월을 읽으면,
발자국은 소리가 나지 않는데...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 '발걸음 소리'인데...

'누룽지를 후루룩 마셨다'는 월을 보면,
누룽지는 딱딱해서 후루룩 마실 수 없는데... 눌은밥을 후루룩 마셨을 텐데...

이렇게 책을 읽을 때 내용은 뒷전이고,
맞춤법 틀린 곳만 눈에 확 들어옵니다.
저는 내용에 푹 빠지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병일까요?

텔레비전 볼 때는 자막 틀린 게 눈에 확 들어오고,
술 먹을 때는 술병에 붙은 상표에 있는 틀린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병이죠?

요즘은 제 딸내미도,
"아빠, 이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죠? 그쵸?"라고 합니다.
딸내미도 증세가 심각합니다.
아마 곧 두 살배기 아들에게까지 전염될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누구 이 병의 이름을 알면 좀 알려주세요.
치료방법도 같이...



그 편지를 보내고 나서 받은 답장 몇 개 소개합니다.

조ㅎㄱ 님

성제훈 선생님!!
선생님의 병이 제게도 꽤 심합니다.
사실은 이 병이 온 국민에게 번졌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다듬어 쓰는 것이 누구나 책임있게 해야 할 일일 텐데...
언론의 잘못된 지나친 높임말, 인격체가 아닌 데다 쓰는 높임말, 아무데나 붙이는 분,
여론조사 기관의 전화, 서비스센터, 카드사에서 오는 전화는 정말 이 병을 더욱 부추깁니다.
제 병도 보통은 아닙니다.
선생님의 "우리말"을 만나는 분들이라도 많아져서 이 병이 더욱 번지기를 빌어봅니다.
이 병 이름은 <우리말 사랑병>이라고 할까요?



문ㅇㅌ 님

귀하의 병, 저도 앓은지 40년이 넘습니다. 저의 경우 병세가 좋았다가 나았다가가 아니라
그냥 늙은이 해소처럼 골골골 입니다. 지금도 신간을 사 들고 읽을 때,
늘 한 손에 교정(제 아내는 교정이 아니라 '트집'이라고 함)용 붉은 볼펜을 들고 읽는데...,
솔직히 그 트집(?)에도 꽤 괜찮은 즐거움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러긴 해도....,
실제로 저도 나름대로의 글을 쓰거나(표기, 편지 등등) 말 할 때 바르게 하려고 힘 쓰지만,
글을 쓰고 난 후, 다시 읽어보면 바른 철자표기와는 거리가 머니, 대화할 때 언어구사는 얼마나  
제멋대로일까..., 그렇게 반성하고 삽니다.
늘 귀하의 왕팬(?, fan의 우리말 표현을 잘 몰라서)으로서 귀하의 애쓰심에 감동을 받습니다.
장마에 강건하소서.
치료하실 필요, 절대, 절대 절대로 없습니다.
그 병 마구, 마구, 마구 퍼트려 주시기를!
앞에 쓴 편지가 길어서 오늘은 예전에 보낸 편지를 붙이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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