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7, 2013

우리말, 잠 이야기 2013-11-15

삶과 함께하는 우리말 편지
2013. 11. 15.(금요일)
잠 가운데 으뜸은 ‘꽃잠’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의 본디 뜻은 “깊이 든 잠”이다.
이 꽃잠보다 더 깊이 잠드는 것을 ‘왕잠’이라 한다.
안녕하세요.

눈 깜짝하니 벌써 주말이네요.
저는 오늘 저녁에 광주에 가서 상가에도 들르고, 선배님 만나 은사님 정년퇴임 건도 상의드리고 새벽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주말에는 애들 친구네 가족과 함께 1박 2일 놀러 가기로 했고요. 저도 나름대로는 바쁩니다. ^^*

오늘도 한글학회와 한글문화연대 학술위원이신 성기지 님의 글을 함께 읽고자 합니다.
제가 쓰는 허섭스레기 같은 글보다는 전문가가 쓰신 글에서 배울 게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성기지 님의 글을 자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잠에 관한 우리말글_성기지 학술위원

초겨울로 들어서면서 해오름이 늦어져 새벽잠이 깊어진다. 새벽이 되어도 창밖이 어두우니,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겨울은 깊은 잠이 그리운 계절인가 보다.

잠 가운데 으뜸은 ‘꽃잠’이라 할 수 있다. 사전에서는 ‘꽃잠’을 “신랑 신부가 첫날밤에 함께 자는 잠”이라고 황홀하게 그려놓고 있지만, 이 말의 본디 뜻은 “깊이 든 잠”이다. 깊이 잠들어야 건강한 법이니, 꽃잠은 말 그대로 건강의 꽃이다.

이 꽃잠보다 더 깊이 잠드는 것을 ‘왕잠’이라 한다. “아주 오래 깊이 드는 잠”이란 뜻이다. 첫 휴가 나온 아들이 꼬박 스물네 시간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서는 아까운 하루를 까먹었다고 징징댄다. 그것이 왕잠이다. 이 왕잠보다도 더 깊이 잠들었다는 것을 나타내느라 만든 말이 ‘저승잠’이다. “흔들어 깨워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이 드는 잠”이다. 80년대에 널리 읽혔던 소설 가운데 <죽음보다 깊은 잠>이란 게 있는데, 바로 저승잠이다. 그런가 하면, ‘이승잠’이란 말도 있다. “이 세상에서 자는 잠”이란 뜻으로, 병을 앓고 있는 중에 계속해서 자는 잠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은 ‘의식불명’이니, ‘식물인간’이니 하는 말을 쓰지만, 옛날에는 아직 이 세상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이승잠’이라 했다.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이나 책을 읽다가 자게 되면, 그 다음날에 일을 하면서 도무지 눈꺼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아무리 참아도 나른하고 자꾸 눈이 감기는 잠”을 ‘이슬잠’이라고 한다. 이슬잠이 오면 의자에 앉은 채로 그냥 자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앉아서 자는 잠”을 ‘말뚝잠’이라 한다. 사무실에서 말뚝잠을 자는 것이니, 잠이 깊이 들 리는 없다. 인기척이 들릴 때마다 자주 깨면서 자는 잠을 ‘노루잠’ 또는 ‘괭이잠’이라고 한다. 초상집에 가서 밤을 새울 때에는 아무데서나 잠깐씩 눈을 붙여 잠을 자게 되는데, 이것을 ‘토끼잠’이라고 한다.

‘꽃잠, 왕잠, 저승잠’이 깊은 잠이라면, ‘이슬잠, 말뚝잠, 노루잠, 토끼잠’은 얕은 잠이라고 할 수 있다. 잠 가운데 재미있는 말 한 가지를 더 들면, ‘해바라기잠’이란 게 있다. 수학여행이나 캠프를 가게 되면, 이불 한 장에 여러 사람이 가운데에 발을 모으고 바큇살처럼 둥그렇게 누워 자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해바라기잠’이라 한다. 해바라기의 모습을 본뜬 말이다.

고맙습니다.
아래는 2007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충남대학교는 녹록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은 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로 시작할게요.
실은 제가 작년 말에 충남대학교 교원공채에 응모한 적이 있습니다.
1차 서류심사, 2차 논문심사, 3차 공개발표까지 하고,
지난주 목요일에 4차 총장면접을 했습니다.
그 결과를 오늘 발표하는데, 아무래도 저는 떨어진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을 어쩔 수 없네요.

제가 대학교 교수를 너무 쉽게 봤나 봅니다.
교수 자리가 그렇게 녹록한 자리가 아닌데...

오늘은 아쉬움을 달래며 녹록과 록록, 녹녹을 갈라볼게요.

먼저,
'녹녹하다'는 그림씨로
'물기나 기름기가 있어 딱딱하지 않고 좀 무르며 보드랍다.'는 뜻입니다.
녹녹하게 반죽을 하다처럼 쓰죠.
한자어가 아니라 순 우리말입니다.

녹록(碌碌/錄錄)하다도 그림씨인데,
'평범하고 보잘것없다.'는 뜻과 '만만하고 호락호락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녹록하지 않은 사람/나도 이제 녹록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처럼 씁니다.

록록하다는 북한에서 쓰는 말로,
'녹록하다'를 그렇게 씁니다.

굳이, 억지로 말을 만들어보자면,
제가 충남대학교를 녹록하게 보고 덤빈 거죠.
(녹녹하게나 록록하게가 아닙니다.)
그러니 떨어지죠. ^^*

아마도 교수가 되기에는 모든 면에서 턱없이 부족하니,
실력과 덕을 더 쌓고, 좀더 겸손해지고,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나누고 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는 일부러 말을 만든 것이고,
저는 절대 충남대학교를 만만하게 보거나, 호락호락하게 보거나 녹록하게 보지 않습니다.
비록 저를 떨어뜨린 학교지만,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기를 빕니다.
더불어 이번에 충남대학교 교수가 되신 정 박사님의 앞날에도 큰 발전이 있기를 빕니다.

저는 오늘부터 베풂을 실천하고자
오늘 점심때 우리 과 직원을 모두 모시고 점심을 대접하겠습니다.
충남대학교 교수 떨어진 기념(?)으로...^^*

고맙습니다.

우리말 123

보태기)
움직씨 '베풀다'의 이름씨는 '베품'이 아니라 '베풂'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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