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22, 2011

우리말, '코스모스 만개'와 '살사리꽃 활짝'... 2011-08-23

이제 곧 방송과 신문에서 살사리꽃이 활짝 핀 길을 소개하겠죠?
그러면서 '코스모스 만개'라는 꼭지를 뽑을 겁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코스모스 만개'라고 제목을 뽑지 마시고
'살사리꽃 활짝'이라고 뽑아 주세요.
만개(滿開, まんかい[망가이])가 일본말이란 것을 다 알고 계시잖아요.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에도 아들 녀석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일터에 나왔습니다.
이런 기쁨을 맛보는 저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살랑살랑 부는 가을바람이 참 부드럽고 좋더군요.

우리말에 '건들바람'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초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건들바람이 부니 일하기에도 훨씬 수월하다처럼 씁니다.
'간들바람'이라는 낱말도 있습니다.
"부드럽고 가볍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라는 뜻인데 '건들바람'과 큰말 작은말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가을 하면 코스모스꽃이 생각납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 원래부터 이 땅에서 자라난 우리 꽃처럼 생각됩니다.
이 코스모스의 순우리말이 '살사리'라고 합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거리고 살살 대는 모습에서 '살사리(살살이→살사리)꽃'이란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살사리꽃'을 두고 어떤 분은 순우리말이라고 하고, 또 다른 분은 북한에서 쓰는 문화어라고도 하고...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살사리꽃'을 뒤져봤습니다.
예전에는 "'코스모스(cosmos)'의 잘못."이라고 나와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그냥 코스모스를 보라고만 나와 있네요.
어쨌든 잘못된 말이니 쓰지 말라는 겁니다.

그럼,
해바라기는 왜 그냥 뒀죠?
"선플라워(sunflower)의 잘못'이라고 해야 하고,
토끼풀은 "클로버(clover)의 잘못'이라고 풀어야 하지 않나요?

우리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살사리꽃'을 쓰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라일락보다는 수수꽃다리가 더 좋고, 코스모스보다 살사리꽃이 더 아름답습니다.

어제저녁에 만난 한 어르신은 방송에 나온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보시고,
차라리
'계란으로 암벽 격파'라고 쓰지 그랬냐며 쓴소리를 하셨습니다.
좋은 우리말 달걀을 두고 왜 계란이라고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곧 방송과 신문에서 살사리꽃이 활짝 핀 길을 소개하겠죠?
그러면서 '코스모스 만개'라는 꼭지를 뽑을 겁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코스모스 만개'라고 제목을 뽑지 마시고
'살사리꽃 활짝'이라고 뽑아 주세요.
만개(滿開, まんかい[망가이])가 일본말이란 것을 다 알고 계시잖아요.

'코스모스 만개'와 '살사리꽃 활짝'...
제발...

고맙습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 입니다.





[굴레/멍에]

제가 아는 사람 중에 7대 독자가 한 명 있습니다.
얼마 전에 태어난 그 사람 아들은 8대 독자죠.

누군가,
그 사람의 아들은 8대 독자라는 멍에를 쓰고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요즘은 독자가 많다지만, 그래도 8대 독자는...
묘셔야할 조상만해도... 제사가 몇 건이며, 벌초해야 할 봉은 몇 개 인지...
제가 생각해도 좀 짠하네요.

오늘은 그 8대 독자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겠습니다.

굴레가 뭔지 아시죠?
소에 코뚜레를 꿰어 머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동여맨 것을 말합니다.
그 코뚜레로 힘센 소를 힘 약한 사람이 부릴 수 있는 거죠.
그 코뚜레는 소가 어느 정도 크면 채워서 소가 죽을 때까지 차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멍에는 다릅니다.
멍에는,
달구지나 쟁기를 끌 때 마소의 고개에 가로 얹는 구부정한 나무를 말합니다.
이 멍에는 소의 힘을 빌려 일을 할 때만 소의 목에 겁니다.
소가 태어나서부터 평생 쓰고 있는 것은 아니죠.

굴레와 멍에는 둘 다 소를 속박하는 것이긴 하지만,
굴레는 죽을 때까지 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멍에는 일을 할 때만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노비의 자식, 살인법의 아들...처럼 내 의지로 평생 벗을 수 없는 게 ‘굴레’고,
남편의 속박, 가난, 친구와 불화...처럼 내 노력에 따라 벗을 수 있는 게 ‘멍에’입니다.
“가난이라는 멍에는 노력하면 벗을 수 있다. 굴레처럼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면 안 된다”처럼 쓸 수 있죠.

그럼,
8대 독자는 멍에일까요, 굴레일까요?
제 생각에 그건 부모에게 달렸습니다.

부모가 아들을 하나 더 낳으면 8대 독자에서 벗어나므로(벗어날 수 있으므로) ‘멍에’고,
부모가 애를 낳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평생 8대 독자가 되니, 그것은 ‘굴레’고...

그나저나,
현재까지 8대 독자인 그 녀석이
건강하게 잘 자라길 빕니다.
여러분도 그 아기를 위해 기도해 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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